2021년 2월호

금융감독원장이 임기 막판 ‘독립’ 외치는 이유

[금융 인사이드]라임·옵티머스 사태 터지자 적기 여긴 듯, 가능성은 ‘글쎄’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1-02-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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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자 때부터 금융감독 체계 개편 주장

    • 與 의원도 “금융산업 정책 기재부 이관”

    • 사모펀드 부실화 ‘남 탓’ 한다는 지적

    • 文대통령 공약이지만 금융권은 회의론

    2020년 10월 23일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국회 종합감사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왼쪽)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답변을 하고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2020년 10월 23일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국회 종합감사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왼쪽)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답변을 하고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금융감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며 금융감독이 금융행정의 마무리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 2018년 5월 8일, 윤석헌 금융감독원 원장 취임사 

    “IMF(국제통화기금)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가 감독정책과 집행의 일원화를 강조하고 있다. 어떤 것이 효과적인 금융감독 체계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 2021년 1월 1일, 윤석헌 금감원장 신년사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한 가지 주제에서만큼은 변함없는 사람이다. 그는 금감원장으로 취임한 지난 2018년부터 임기가 3개월가량 남은 지금까지 일관된 입장을 내놓고 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더욱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민간 기관인 금감원이 금융위원회라는 정부 조직의 관리를 받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 기능은 물론 금융산업 육성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규제(감독)를 강화하면 산업이 위축할 수밖에 없고, 산업을 키우려면 규제(감독)를 완화해야 한다. 상충하는 기능을 금융위가 동시에 갖고 있다는 의미다. 윤 원장은 이런 구조 탓에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으니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기능을 분리하는 등 금융감독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다.

    결국 금융위 해체론?

    윤 원장은 학자 출신이다. 그는 과거 숭실대 교수 등을 지내면서 지속해 우리나라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의 독립성을 높이고 금융위 기능은 금감원과 기획재정부 등에 나누자는 주장이다. 결국 금융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보통 학자 출신 인사들이 정부 기관 수장을 지내면 과거 교수 시절 입장을 번복해 논란이 될 때가 종종 있다. 현장을 겪다 보면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원장은 꾸준히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이쯤 되면 윤 원장이 금감원의 독립성 강화를 주장해도 별로 이상할 게 없다고 느끼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최근에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다. 윤 원장의 임기는 올해 5월 7일까지다. 그런데 그는 지난해 말 송년 기자간담회에서도,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도 ‘금감원 독립론’을 재차 꺼내 들었다. 임기 말에 더욱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금감원 독립성 강화는 크게 보면 정부 조직 체계 개편까지 이어지는 무거운 사안이다. 금융위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혹은 금융위를 아예 없앨지, 그렇다면 금융위가 보유하고 있던 기능은 어느 부처로 이관해야 할지 등을 논의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장관급(금융위원장)을 수장으로 하는 정부 조직을 만들고 없애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현 정권 임기가 1년여 남은 시점이다. 레임덕(권력 누수)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마당인데 차관급(금감원장) 인사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해도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윤 원장은 왜 지금 이렇게 어렵고도 복잡한 이슈를 적극적으로 꺼내는 걸까.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벌어진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대규모 부실 사태로 풀이된다. 국회가 사태의 책임과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윤 원장 역시 사모펀드 부실화 등 대형 금융 사고의 원인으로 현행 금융감독 체계를 꼽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해당 이슈가 거론됐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장에서 금융감독 개편 관련 화두를 던졌고, 같은 당 유동수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같은 취지의 주장을 폈다. 유 의원은 “금융산업 정책은 기재부로 이관하고 금융위를 민간 중심의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해 금융감독 기능만 갖도록 하는 것이 대형 금융 사고를 막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관련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해 11월 입법조사처는 전 세계 주요 국가 중 금융감독 기능이 정책(금융위)과 집행(금감원)으로 분리된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면서 이러한 기형적 구조 탓에 금융감독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론에 힘을 싣는 내용이다.


    감독 실패 인정 안 하는 ‘남 탓’

    2020년 10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석헌 금감원장(뒷모습)이 라임·옵티머스 부실 사태에 관한 야당 의원의 질의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2020년 10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석헌 금감원장(뒷모습)이 라임·옵티머스 부실 사태에 관한 야당 의원의 질의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결국 펀드 사태라는 대형 금융 사고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가 여당이 힘을 실어주고 있으니 윤 원장 역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174석을 보유한 만큼 여론 등 여건만 갖춰지면 추진할 힘은 갖고 있다. 

    다만 금융권에는 환경이 호의적으로 조성되더라도 현시점에서 금융감독 체계를 바꾸기 어려우리라는 시각이 많다. 사모펀드 부실 사태가 대형 금융사고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금융감독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 정도의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정부가 금융감독 시스템을 재정비한 주요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1997년 IMF 외환위기다. 당시 금융감독을 맡아온 관료들에게 책임론이 쏟아지면서 금융감독원이라는 민간 기구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금융위를 신설하는 개편이 있었다. 이때는 정권 초 대통령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다. 

    윤 원장 처지에서는 학자 시절부터 품은 과업을 기회가 왔을 때 추진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임기 중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도 이슈를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러나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어렵고 복잡한 일일수록 기회가 왔을 때 곧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지금 분위기는 반대다. 당장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은데 갑론을박만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 경우 이해관계자나 여론의 피로감만 높아져 되레 장기적인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실제 금융권 안팎에서는 윤 원장이 사모펀드 사태 원인을 외부 문제로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해 나오고 있다. 윤 원장이 금융감독 체계 개편 얘기를 꺼내면 꺼낼수록 의심의 눈길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금감원의 감독 실패는 인정하지 않고, 시스템 문제만 꺼내 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분위기가 금감원에 장기적으로 좋을 리가 없다.

    명분과 부작용 사이

    윤 원장의 연임 여부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그간 금감원장 연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시피 했다. 일단 윤 원장에게 금융감독 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토록 과제를 맡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윤 원장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명분은 인정하지만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윤 원장은 현 정권의 실세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만큼 본인도 금감원 독립을 당장 추진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길게는 다음 정권에서 검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일단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정도의 행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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